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품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 대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청소년 시기에 읽었던 책인데 최근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포스팅한 <마크하임>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작품인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더불어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지킬 박사로 부터 분리된 순수한 악의 결정체인 하이드가 어린 아이를 짓밝고 사람을 살해하며 악을 서스럼없이 저지르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내재적 욕망을 대변하는 하이드 씨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양심과 도덕을 무시한 채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의 삶을 위한 행동을 이어갑니다.
지킬 박사로 대변되는 대부분의 인간은 지킬 박사처럼 선과 악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양심과 도덕 그리고 때로는 법의 규제로 악을 통제하고 절제하며 스스로 누르며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지킬 박사는 비율 좋은 몸매와 선한 인상으로 덕망이 높아 보이는 인물로 우리가 흔히 만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이드는 어떨까요? 하이드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수많은 하이드가 숨어있습니다. 하이드라는 이름처럼 ~~ 여기서 하이드는 젊지만 작은 키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며 기형적인 말투를 가진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그가 웃는 것 조차 불쾌한 느낌이 덜 정도로 악의 인상을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킬은 외형적인 즉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것 같고, 하이드는 하이드의 내면을 외면으로 묘사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삶에서 하이드를 만난다 하더라도 쉽게 구별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킬 박사의 이중적인 본성은 결국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을 대변하고 있고, 우리가 악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을 때 내면에 숨어있는 악의 본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하이드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선과 악의 본성을 함께 가지고 있던 지킬 박사는 자신의 쾌락적 욕망을 위해 순수한 자신의 악을 분리하여 하이드를 만들고 그 하이드를 통해 쾌락적 욕망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욕망이란 다양합니다. 돈, 성, 명예, 권력 등 그 욕망에 사로잡혀 양심과 도덕 그리고 법 앞에 무너져 내리는 수많은 하이드들이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내가 변신한 채로 탐닉했던 쾌락은 품위하고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 하이드이 손아귀에 들어가자 나의 쾌락은 극악무도한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짧은 유희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종종 하이드기 대신 저지른 사악한 행위에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본문 내용 중 발췌 |
지킬 박사는 어느 순간부터 약을 먹지 않아도 저절로 하이드로 변합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쾌락적 욕망이 이제는 양심과 도덕, 법으로도 제어가 안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욕망인 하이드가 저지른 죄악에 대해, 어느 순간 지킬 박사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목소리인 선과 충돌하며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하이드는 교수대에서 죽제 될까?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해방시킬 용기를 낼까? 하느님만 알고 계실 것이다. 어떻게 되든 나는 상관없다. 이 순간이 내가 진정으로 죽는 순간이다. 이제 펜을 내려놓고 내 고백을 봉인하면서 나는 불행한 헨리 지킬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본문 내용 중 발췌 |
지킬 박사는 하이드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보다 자살을 선택합니다. 이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으로부터 도피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추구했던 욕망인 하이드를 제어하지 못하고 죽음을 택함으로써 지킬 박사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양심과 도덕적 정의가 '악'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살을 선택한 지킬 박사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킬 박사가 자신이 저지른 쾌락적 욕망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 했을까요? 지킬 박사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죗값을 치르지 않고 회피하거나 도피해 버린다면 우리사회에 발생하는 악에 대해 어떻게 경계할 수 있을까요? 악의 본성에 대한 경계가 가능하기는 할까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또 다른 작품 <마크하임>은 자신에게 내재된 악의 본성을 극복하고 악을 미워하는 과정에서 선을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지킬 박사는 악의 행위에 대해 스스로 자살이라는 도피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해결 방법이 과연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악을 경계할 수 있는 방법일까요? 스스로 자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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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악의 본성은 누가 보지 않거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또는 사회적, 법적 규제가 없을 때 고개를 내미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이드처럼 욕구나 충동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인간답게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욕구의 옳음을 판단하고, 충동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자신에게 숨어있는 마음 속의 '하이드'를 통제해야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게 내재된 하이드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소 추구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것은 정말 정의롭고 이상적인 것인지? 타인에게 해는 주지 않는지?
이러한 질문에 이르게 되면 결국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스스로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됩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1837년부터 1901년까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던 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당시 영국은 산업 중심 사회로 발전하던 시기였고,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지만 잔악한 식민지 통치와 열악한 빈곤층의 문제가 공존했던 시대였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영국은 경제적, 과학적 결과를 중시하다보니 사회적 분위기에 맞게 도덕적 자질을 강조하였지만, 속으로는 쾌락적 욕망을 추구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킬 박사는 학문적 열정, 종교적 자선 등의 선한 면을 보이며 당시 영국 사회가 지향하던 가치를 보여주는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지식인들은 지킬 박사처럼 비도덕적인 일이나 사회적 질서를 해치는 일을 마주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보다 부정하거나 회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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